한국 전통음악 보존과 발전을 담당하는 ‘국립국악원’
국립국악원은 전통 음악을 보존하는데 그치지 않고, 시대 흐름에 발맞춰 이를 확장하고 발전시키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게임 사운드 시리즈’죠. 이 프로젝트는 지난 2024년, 국립국악원이 국악과 K콘텐츠 연계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목표 하에 시작됐는데요. 다양한 게임 음악을 국악으로 재해석해 각종 음원 플랫폼에 선보이고 있습니다.
‘나 혼자만 레벨업:어라이즈’ 게임 사운드 시리즈 앨범 커버 (사진 제공: 국립국악원)
이번 게임 사운드 시리즈에 넷마블 게임 음악이 함께했습니다. 바로 액션 RPG ‘나 혼자만 레벨업:어라이즈’가 그 주인공인데요. <나 혼자만 레벨업> IP는 웹소설을 시작으로 웹툰, 애니메이션, 게임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K콘텐츠의 대표 주자입니다. 이번 국립국악원의 협업은 전통 음악과 현대 콘텐츠의 접점을 넓힌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은 의미를 지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임 사운드 시리즈 쇼케이스 공연이 열린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게임 사운드 시리즈 ‘나 혼자만 레벨업:어라이즈’ 국악 청음회는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이날 앨범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열고, 수록곡 소개 및 창작악단 연주자들의 라이브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왼쪽부터) 정소림 캐스터, 이지수 교수, 양승환 감독
쇼케이스 진행은 베테랑 게임 캐스터 정소림 아나운서가 맡았고, 토크 패널로 서울대학교 이지수 교수, 양승환 음악 감독이 참석했습니다. 이지수 교수는 서양음악 전공에 다수의 영화·드라마 OST 작업을 해온 작곡가이며, 양승환 감독은 국악과 서양, 현대음악을 넘나들며 다양한 곡을 선보인 이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번 게임 사운드 시리즈 앨범에는 편곡자로 참여, 쇼케이스를 통해 곡 소개와 작업 비하인드, 그리고 대중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동서양 음악 관련 배경 지식을 전했습니다.
이번 쇼케이스에서 들을 수 있었던 국악 버전 ‘나 혼자만 레벨업:어라이즈’ OST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앨범에 담긴 곡은 ARISE(Inst.), Monarch of White Flames Pt.2 (The Baran’s Theme), Blood Red Commander (The Igris' Theme), Sunset Duel (Summer Battle Theme), Cave of Carnage, Endless Desert 총 6곡이죠. 이 가운데 4곡을 쇼케이스 현장에서 라이브 연주로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ARISE(Inst.)' 국악 무대
편곡 작업 비하인드를 소개하고 있는 이지수 교수
첫 무대는 ‘ARISE(Inst.)'였습니다. 원곡은 강렬하고 에너지 넘치는 사운드가 특징인데, 편곡을 맡은 이지수 교수는 “신스 베이스를 거문고로 옮기는 과정에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다 산조 멜로디를 차용했습니다”라며 “이를 토대로 베이스를 만들고 그 위에 대금과 피리를 자연스럽게 얹어 담백한 실내악 느낌을 선사하는 방향으로 작업했습니다”라고 설명했죠.

양승환 감독. 두 전문가의 유익하고 재치있는 입담이 공연의 즐거움을 배가시켰죠
아울러 국악을 전공한 양승환 감독은 “거문고를 베이스로만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진모리 장단에 적절한 간주를 가미하는 식으로 쓰이는 것은 처음 봤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거문고가 5세기 고구려 음악가 왕산악에 의해 만들어져 1,500년 이상 역사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처럼 오래된 국악기로 현대적 감성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왕산악 선생님이 보신다면 무덤에서 일어나실 것 같네요”라고 해 현장을 웃음 바다로 만들었습니다.

Sunset Duel (Summer Battle Theme) 공연 모습

국악긱 중 강렬한 사운드라 하면 꽹과리가 빠질 수 없죠
두 번째 무대는 ‘Sunset Duel (Summer Battle Theme)’이었습니다. 제목 그대로 여름철 해변을 배경으로 한 전투에서 흘러나오는 배틀곡이죠. 이 노래를 편곡한 양승환 감독은 “전투 테마인 만큼, 볼륨이 큰 악기들을 골랐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창작악단 단원들이 무대에서 사용한 악기는 꽹과리, 장구, 그리고 태평소였는데요. 이 악기들은 전통 행진곡 ‘대취타’ 연주에서도 쓰입니다. 그래서 ‘Sunset Duel (Summer Battle Theme)’ 공연은 말 그대로 ‘신명이 넘친다’고 할 수 있었죠.


Endless Desert는 ‘양금’을 사용해 중동의 이국적인 느낌을 전했습니다
다음 이어지는 무대는 사막 배경 전투 OST ‘Endless Desert’이었습니다. 한국에 없는 사막을 주제로 한 노래인 만큼, 가락에서도 이국적 감성이 돋보였는데요. 이 같은 감성은 국악기 ‘양금’에서 비롯됐죠. 양승환 감독은 “양금은 ‘서양금’이라고도 하는데, 이름처럼 서양에서 중국을 거쳐 들어온 악기입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중동 지역 악기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라면서, 사막이 흔한 중동 지역의 느낌을 가미하고자 양금을 곡 구성에 포함시켰다고 설명했습니다.
Blood Red Commander (The Igris' Theme) 무대
마지막 노래는 ‘나 혼자만 레벨업:어라이즈’에서 중요한 장면 중 하나인 첫 번째 전직 퀘스트에 나오는 ‘Blood Red Commander (The Igris' Theme)’입니다. 주인공 성진우가 ‘핏빛의 이그리트’와의 사투 끝에 승리한 다음, 그림자 군주로서 처음으로 ‘일어나라’를 말하며, 그의 첫 그림자 군단을 일으켜 세우는 내용이죠. 공연에서는 앞서 소개한 장면을 담은 백월 영상이 스크린을 통해 상영되는 가운데, 연주자가 부는 태평소 소리가 풍류사랑방을 가득 채웠습니다.
강렬한 사운드가 어우러져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하는 태평소 연주
편곡을 맡은 이지수 교수는 “서양 음악에서 오케스트라 합주음을 뚫고 나오는 악기가 트렘펫인데, 태평소는 트럼펫보다 더 강한 소리를 내는 악기입니다”라면서 “평소 협주곡에 사용해보고 싶었었는데, 이번 노래 원곡을 듣고나서 기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투 장면이면서 원초적 에너지 같은 이미지와도 잘 맞아 태평소를 전면에 세우게 됐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양승환 감독은 “전통적이고 정석적인 태평소 연주법에는 반음을 내는 방법이 없습니다. 반음을 내려면 연주자가 세밀한 기교를 구사해야 하는데, 태평소 연주자가 이 부분을 완벽하게 소화했다고 말하고 싶네요”라고 덧붙였죠.
이 곡을 끝으로 게임 사운드 시리즈 신규 앨범 쇼케이스 ‘나 혼자만 레벨업:어라이즈’ 파트가 막을 내렸습니다. 이번 무대에서는 변화된 장르와 악기 구성에 맞춰 원곡과는 또 다른 감성과 매력을 전하는 곡들이 선보였으며, 동시에 원곡의 속도감과 박진감을 고스란히 살려낸 곡도 있었습니다. 음악을 통해 전통과 현대를 넘나든 이번 협업은 K-콘텐츠의 새로운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게임을 넘어 또 다른 영역으로 뻗어나간 ‘나 혼자만 레벨업:어라이즈’의 변주가 앞으로 어떤 울림을 이어갈지 기대를 모읍니다.

